제1부
2020년 현재 대한민국의 사형확정자는 총 60명이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전지구적으로 점차 공식적 폐지 또는 집행정지의 길을 걷고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2020년 11월 17일 유엔 총회 3위원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움’
결의안에 찬성 표결을 던지는 등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이와같은 전지구적 추세에 따라 각각 1996년, 2010년에 있었던 2회의 사형제도
관련 위헌제청 판결에서 사형제 폐지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형제에 대한 일반국민의 여론은 이와 반대로 존치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특히 일반 여론의 경우 여론 수렴이 모아지는 당시의 개별 사안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절대적 종신형과 징벌적 손해배상 등 사형 폐지 이후의 대안을
전제로 할 경우, 사형제의 폐지를 긍정하는 여론 역시 높았다는 점이다. 한국갤럽과
국가인권위원회의 2018년 사형제도 관련 연구조사는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 있어 적절한 대체형벌을 고안해야 할 필요성을 새삼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사형제를 둘러싼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우리 사회가 사형제도의 변화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을 보여 준다. 이에 본 연구는 사형 폐지 이후 취해져야할
입법적 조치 및 가능한 대체형벌의 형태를 탐구한다. 이를 위해 먼저 대한민국 사형제의 법률 현황과 통계 및 관련 문헌을 통해 우리 사형제의 실태를 조망하고 법적 형식을
고찰하였다. 국내 사형제의 현황에 대해 파악하기 위하여 법정형으로 사형을 포함한
법률 및 조문을 범주화하여 구분하고, 사형확정자에 대한 다양한 통계를 입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법상에서 사형이라는 형벌은 다양한 모습으로 분산되어 규정되어 있다. 때문에 사형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 및 조문들 중 사형을 법정형으로 규정한
법률, 사형확정자를 규정한 법률, 사형의 선고 및 절차를 규정한 법률을 일일이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이들 법률을 각각 ① 살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생명침해를 결과로 사형을 규정한 법률, ② 특수한 상황 때문에 사형을 규정한
법률, ③ 사형에 대한 일반 규정 및 처우와 절차 등을 규정한 법률, ④ 사형을 유일하게
법정형으로 규정한 법률로 범주화해보았다.
이어서 법무부의 도움을 받아 사형제와 사형확정자에 대한 통계를 통해 국내 사형
확정자와 사형제도의 실태를 확인해보았다. 먼저 인구학적으로는 2020년 10월 현재,
총 60명의 사형확정자 중 군교도소에 수용된 4명을 제외한 56인 중 54인이 40대
이상의 중년 및 노년층이다. 이러한 상황은 사형확정자의 수용기간이 평균 19년 4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져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1998년 이후 5인이 자살을 택하였고
6인이 병사하였다. 사형확정자들의 범죄를 적용법조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모두 생명에 대한 침해 범죄로 인해 사형을 언도받았음을 알 수 있다. 적용법조에서 가장 빈번한
죄목은 살인(31건), 강도살인(20건), 성폭법위반(12건) 등이다. 이들의 수용 중 생활에
관련해서는 32인이 독거를 선택하고 있었고 18인이 출역을 나가고 있었다. 사형확정자들은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었고, 4인을 제외하고는 가족・인척관계, 지인 관계 중
일부나 전부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사회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 37인이 재판에서 심신장애를 주장하였고, 4인이 재심청구를 하였으며, 4인은 각 1회씩
도주를 기도한 바 있다.
사형을 폐지 이후의 대체형벌에 대한 고민들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비교법적으로 형벌의 종류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종신형이고, 두 번째는 상한이 있지만 기존의 유기 자유형보다 수감 기간이 긴 유기자유형이다.
전자의 종신형을 도입한 국가들은 다시 상대적 종신형을 도입한 국가와 절대적 종신형을 도입한 국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기자유형을 도입하여 종신형의 가장 큰
속성인 부정기성을 지닌 형벌이 없는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수형자들에게 사회복귀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먼저, 종신 자유형으로 사형을 대체한 국가들 중 상대적 종신형으로 사형을 대체한
국가로는 독일, 영국, 프랑스, 터키, 몽골, 러시아, 이탈리아, 폴란드, 스위스,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리아, 벨기에, 스웨덴, 아일랜드, 헝가리, 루마니아가 있으며 절대적 종신형으로 사형을 대체한 국가로는 네덜란드, 필리핀이 있다. 종신형이 아닌 유기 자유형으로 사형을 대체한 국가들은 스페인, 노르웨이, 크로아티아, 포르투갈이 있다.
한편, 사형제도를 유지하면서 종신형이나 유기, 또는 무기 자유형의 운용을 달리하여 사형 선고와 집행을 줄이는 입법례가 존재한다. 이는 엄밀히 말해 사형 폐지라고 볼 없지만 일부분 사형을 대체한 형태로, 사형을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검토의 의의가 있다. 벨라루스는 사형과 종신형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방글라데시도 사형과 종신형을 함께 두고 있다. 그 외에 사형제도를
유지하면서 자유형을 적용하는 중국은 사형집행유예제도를 두어 사형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가 고의에 의한 범죄가 없으면 무기징역, 중대한 공적이 있을 경우 유기징역으로 감형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였다. 사형집행유예제도는 사형에 처해질 사형수의 수를 감소시키는 기능을 수행하며 사형의 위하력과 국민감정을 모두 만족시키는
‘과도기적 사형 존치론’ 제도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제2부
미국은 연방정부와 50개의 주정부에서 운영 중인 다양한 사형 및 종신형 제도의
양태를 비교・분석할 수 있는 국가이다. 제2부에서는 사형제 및 종신형을 적극 활용하는 미국의 현황과 축적된 실증 연구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통하여 사형제도의 한계
및 대체형벌로서 종신형 제도의 가능성에 관하여 연구한다.
제2장 미국의 사형제 동향에서는 사형제도의 현황을 개관하며 연방정부와 각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사형제의 모습을 검토하였다. 미국의 사형제는 1600년대부터 시행되어 1900년대 초중반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으나, 1972년 연방 대법원의 Furman
v. Georgia 위헌 판결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연방 및 각 주에서는 기존 사형 제도의
운영을 중지하였고, 새로운 사형 제도의 도입을 준비하였다. 이후 1976년 Gregg v. Gorgia 판결을 통해 연방 대법원은 임의성을 배제하고 절차적 요건을 강화한 사형제의 합헌성을 인정하였고, 각 주정부는 본 판결 내용을 반영한 새로운 사형 제도를
재도입하며 현재의 모습을 띠고 있다.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사형 제도를 활발히 운영하고 집행하는 국가로 분류되나,
미국에서도 사형 선고 수는 2000년대에 들며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2010년대에는 두 자리수대의 선고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집행의 측면에서도 1976년
이후 총 1,524건이 이루어진 것과 대비하여 2000년대부터 지속적 감소가 이루어져
2020년은 총 14건만이 집행되었다.
미국의 사형제는 주정부 차원에서 주로 운영되고 집행된다. 연방정부는 1972년
위헌 판결 이후 1988년에야 사형제를 재도입하였고, 이후 총 3건의 집행만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다만 2020년에 들어 17년 만에 사형 3건을 다시 집행하며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계속해서 집행이 이루어질 지는 여전히 미지수 이다. 2020년 현재 50개 주
중 29개의 주가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으나 그 중 오리건 주, 펜실베이니아 주, 캘리포니아 주는 집행을 잠정 중단한 상태이다. 반면에 사형제를 폐지하는 주는 증가 추세를
보인다. 2016년에 델라웨어 주, 2018년에 워싱턴 주, 2019년에 뉴햄프셔 주, 2020년에 콜로라도 주가 사형제를 폐지하였다. 본 장에서는 각 주별 사형제의 역사와 특징점을 정리하였다.
제3장에서는 미국에서 운영 중인 종신형 제도를 살펴본다. 미국에서 종신형 수형자는 2016년 기준 전체 수형자 9명당 1명에 육박할 만큼 종신형 제도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특히 엄벌주의적 형벌문화 속에서 사형제를 대체하는 형벌로서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본 논의에서는 가석방과 그에 기반한 사회로의 복귀 가능성을 기준으로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과 가석방 가능 종신형으로 유형을 구분하여 각 유형별 종신형
제도의 현황과 기능, 문제점을 확인하였다.
2020년 현재 알래스카를 제외한 49개 주가 사회로부터의 완전한 격리를 의미하는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을 운영하고 있다. 이 중 37개의 주가 1980년대 이후 도입한
주에 해당한다. 엄벌형 또는 사형제의 대체형벌로서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에 대한
수요 증가폭은 가파르다. 그러나 가석방의 부재로 인하여 교화 목적의 달성이 어려우며, 그 엄벌성에 비하여 사법절차적 권리 보장이 미흡하다. 무엇보다 사형제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근거한 위헌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반면 가석방 가능 종신형제는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제에 비하여 증가 추세는 완만하나 전체 인원이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제의 두 배에 이른다. 알래스카와 사우스다코타 주를 제외한 48개의 주에서 가석방 가능 종신형 제도를 운영하며, 일반적으로
복역기간 최소 15년이 지난 수형자에게 가석방 심사 기회를 부여한다. 그러나 가석방제도 운영에 요청되는 체계성이 미흡하며, 엄벌주의 하에서 정치적 영향 등으로 가석방 가능 조건이 엄격해져 사실상 가석방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기도 한다는 점을 비판
받는다.
제4장에서는 사형제의 한계를 확인하고 대체형벌로서 종신형의 효과성을 검토한다. 사형은 폐지와 재도입의 역사가 말하듯 미국에서도 위헌성의 문제를 겪어 왔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사법오류와 생명의 회복불가능성, 위하력 여부, 인종차별, 경제적
부담의 주된 근거로 사형의 폐지 논의가 이루어져왔다. 특히 미국에서는 가치판단적
폐지논의 외에도 형벌효과성과 경제적 비용 측면에서 폐지주장이 강하게 제기되는
특징을 여러 실증 연구 결과들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종신형은 사형에 이를 정도는 아니나 엄벌의 기능을 수행하며 일정부분 위하력을
담보한다. 그러나 사형제와 같은 특별 사법절차가 없고 유죄협상제도가 운영되는 형
사사법 현실상 오히려 무죄 오판의 가능성이 높고, 장기간 구금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 또한 적지 않음이 확인된다. 따라서 사형을 대체하는 형벌로 기능하기 위하여는
절차적 보완과 교정운영상의 문제 해결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제도는 여론의 높은 지지와 수요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문제점들이
더욱 두드러지며 위헌성과 실효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대체형벌로는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제5장에서는 미국에서의 논의검토 결과를 토대로 우리 법에의 시사점을 분석하였다.
우선, 국내에도 미국과 같이 장기간 축적한 다양한 형태의 실태자료의 확보와 그에
기반한 실증연구 진행이 요청된다. 가치판단적 사형제 폐지 논의단계를 넘어 실제
제도로서 사형제의 모습과 실효성을 확인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 이를 위하여
정부차원의 통계자료의 축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둘째, 대체형벌로서 종신형 형태를 구체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사형제의 대체형벌로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을 선호하지만, 가석방 불가능 종신형은
다시금 사형제와 마찬가지의 위헌성 문제를 겪음을 미국의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사형의 종국적 대체형벌로는 불필요한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고 가석방 가능 종신형을 채택하는 것이 적절하다 판단된다. 다만, 현행 가석방 절차를 비롯한
문제점을 보완할 방안의 모색이 요청된다. 마지막으로 대체형벌의 도입을 위하여 대중인식의 제고는 필수적이다. 종신형과
관련한 현실과 인식 사이의 괴리를 해소하고 대체형벌 도입의 필요성에 대한 지지를
획득할 필요가 있다.
제3부
제3부에서는 유럽지역의 사형제도가 개별 국가에서 어떠한 경과를 거치면서 폐지되어 왔는지를 일별하고, 그 지위를 대체한 주된 형벌로서의 종신형의 국가별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았다.
구체적으로는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 제1장에서는 먼저 47개 국가를 회원국으로
보유한 유럽평의회가 그 회원국에 대하여 사형폐지를 선도하는 과정에 있어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유럽인권보호협약 및 그 제6추가의정서와 제13추가의정서의 내용을
확인해 보고, 유럽연합의 기본권헌장에 명시된 사형폐지 조항에 대하여 알아본다.
아울러 국제연합의 사형폐지규약 등 국제 기준과 지역적 차원인 유럽평의회의 관련
국제규약에 대한 서명과 비준 등의 현황을 검토하고, 국가별 사형폐지의 현황에서는
아르메니아를 비롯한 46개 국가가 폐지에 이르게 된 경과와 장기간 사형집행의 모라토리엄에 있는 러시아, 그리고 유럽대륙 유일의 사형집행국가인 벨라루스의 상황을
고찰하였다.
사형폐지와 관련된 국제 규범들은 국제연합의 차원과 지역적 차원에서 각각 창설되어왔다. 특히 유럽지역의 경우는 이와 같은 두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시키는 국제규범에의 가입과 승인 및 비준의 절차가 이행되어 왔는데, 시기적으로 볼 때 국제연합은
세계인권선언에 인간의 존엄과 생명권에 대한 내용을 명문의 국제 규범으로 제시하고, 그 제한과 관련해서도 우선하여 기본적인 방침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실질적인
측면에서 사형 폐지(평시의 폐지와 전시 등 특수상황 아래에서의 모든 경우를 포함한
전면적 폐지)와 이에 대한 개별 국가의 헌법을 비롯한 하위의 형사법령에서 사형을
삭제하는 일련의 이행과정은 지역적 차원에서 유럽평의회의 결단이 선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유럽에서의 사형폐지는 두 차례 결정적인 계기를 맞이하면서 진전되었다. 최초의 본격적인 시도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이후의 일이다. 물론 전쟁 이전(포르투갈,
덴마크,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이나 전쟁 기간(스위스, 스웨덴 등)에 사형을 이미
폐지한 국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경험한 인명 경시와 살상의
일상화에 대한 반동은 사형제도에 대한 역내의 인식에 중대한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즉, 생명권에 기반을 둔 인간 존엄을 가장 절대적인 가치로 승인하는 것이 국가의
존립 이유이자 전쟁의 상처를 추스르는 근본적인 접근법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전체
유럽을 하나의 공감대로 연결할 수 있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의 당사자로 지목되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사형폐지가 이루어진 배경을 살펴보면 이러한 분석은 설득력을
더하게 된다.
1980년대 말에 이르러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함께 권위주의 체제 아래 이데올로기적 연대를 형성하고 있던 동유럽의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분리하거나 독립되면서
유럽의 사형제도는 다시금 전환을 맞이하였다. 구체제를 상징하는 최고형이었던 사형은 범죄로부터 사회를 효율적으로 방어하는 도구라기보다 정치적 오남용으로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전용되었고, 이에 대한 성찰과 자각은 형벌체계에서 사형을 제거하게 되는 결정적 단서로 작용하였다. 이에 더하여 유럽평의회라는
유럽인의 공동체 속에 후발적으로 참여하게 된 국가들에게는 자국의 권익과 지위를
보장받고자 비록 내부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형폐지의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사형폐지국가에 합류한 유럽평의회 회원국들의 경우는 대체로 내부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정치과정(consensus)을 거치지 않고 사형을
폐지하였다.
유럽의 사형폐지 과정에는 일정한 예외가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평시의 사형집행을 유예하거나 중단한 뒤, 법률상의 폐지로 이어지는 단계를 거친 후 전시상황에서의
집행을 유예하거나 중단한 다음 법률상의 폐지가 진행되는 정형화된 패턴이 나타난다. 또한 유럽평의회 회원국들의 헌법을 일별해 보면 사형이 명시적으로 금지되거나
폐지된다는 사실을 헌법 규정으로 선언하고 있으며, 헌법적 차원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1949년, 유럽평의회는 유럽대륙에서 법의 지배, 인권의 존중 및 민주주의의 원칙을
공유하고자 창설되었다. 유럽평의회의 초석이 되는 유럽인권보호협약은 1950년에 채택되었고, 이 조약은 모든 사람의 생명이 법률에 의해 보호되며, 또 누구든지 생명을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 조약은 법률에 의할 경우 사형의
부과를 허용하고 있었다. 유럽평의회가 사형을 인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고 규정하고
그 폐지의 선구자가 된 것은 1980년대부터의 일이다. 1982년, 유럽인권보호협약 제6추가의정서가 채택되면서 유럽평의회의 회원국들은 평시의 사형을 폐지하는 최초의 법적 구속력 있는 규약을 공동으로 승인하였으며, 오늘날 유럽평의회의 47개 회원국
가운데 46개국이 이를 비준하였다. 유일한 예외인 러시아도 비준을 서약하는 단계에
도달하였으며 1989년 이후로 사형폐지는 평의회의 새로운 구성국이 되려는 모든 국가에 대해서 가입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잠정적인 사형의 유보는 2002년, 유럽인권보호
협약 제13추가의정서가 채택됨에 따라 전시 행위를 포함한 모든 상황에 있어서 사형을
금지하는 완전한 사형폐지의 단계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유럽평의회 소속 회원국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유럽연합(EU)의
구성원 국가들은 역내에서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사형 반대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다. 2000년 제정되어 2009년 12월 1일부터 법적 구속력을 가지게 된
유럽연합 기본권 헌장에는 이와 같은 의지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것을 기대하고 희망하는 유럽평의회 소속의 모든 나라는 앞으로도 당연히 사형을 폐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2009년 이후부터 10여년의 사형집행 모라토리엄을 시행하고 있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2005년 이후
현재까지 유럽평의회 소속의 어떤 회원국도 사형을 선고하거나 집행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유럽평의회라고 하는 지역공동체가 단지 잠정적이거나 일시적으로 확보한
변화도, 극악한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를 반드시 응보적 혹은 예방적 차원에서 처형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형사정책에 일시적인 변경이 일어난 것도 아니며, 오랜 시간을
걸친 노력의 결과로 얻어낸 의식적인 운동의 성과였다. 유럽평의회가 일상적으로 이러한 가치를 추진하고 통합하기 위하여 지난 25년 이상을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유럽에서의 사형폐지에 대한 구심점이 되어 왔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다. 이들은 사형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인류사회의 다른 지역에 대해 사형의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제2장에서는 사형이 폐지된 이후 개별 국가의 형벌목록에서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형벌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우리나라에의 시사점을 검토한다.
유럽평의회는 회원국가들에 대하여 장기형과 가석방에 대한 권고를 제시하였고,
종신형 수형자의 처우와 관리에 관한 기준원칙도 표명한 바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국가별 종신형의 운용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에 선행하여 종신형의 종류를 법률
상의 종신형과 사실상의 종신형으로 분류하고, 유럽평의회 소속 국가의 수감인구와
인구 10만 명당 수감인구에 관한 실증적인 통계자료를 토대로 종신형 추이를 비교
분석하였다.
유럽평의회 회원국 가운데 종신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를 주요국과 그 외의 국가
및 종신형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로 대별하여 검토하고, 주요 유럽평의회 국가의 종신형 현황에서는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웨덴, 스페인,
러시아, 터키 등 10개국의 종신형제도에 대한 개요, 석방의 가능성, 국가별 종신형의
추이를 분석하였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의 경우는 종신형이 규정된
범죄구성요건들을 고찰하였다. 영국과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의 경우는 해당 국가의
종신형에 대한 유럽인권재판소의 판단을 약술하였다. 그 외 유럽평의회 국가의 종신형 현황은 알바니아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28개 회원국의 종신형에
대하여 그 개관과 석방의 가능성, 모살죄의 법정형을 국가별로 서술하였다. 28개 국가
가운데 불가리아, 사이프러스, 헝가리, 슬로바키아의 경우는 유럽인권재판소가 해당
국가의 종신형을 검토한 내용을 추가하였다. 안도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체코공화국, 몬테네그로,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포르투갈 등 종신형이 없는
8개 평의회 국가의 경우는 자유형에 대한 개관과 석방의 가능성 및 모살죄에 관한
법정형을 검토하였다.
정리해보면 분석의 대상인 47개 유럽평의회 회원국 가운데 종신형제도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9개국(19.1%)을 제외한 34개국(72.3%)에서 운영 중인 종신형은 가석방의
기준과 최저 복역기간 및 가석방 이후의 부과처분에 있어 국가별 차이가 나타났으나
일단은 종신형에 대한 가석방이 허용되는 형태를 보였다. 그런데 여기서 23개국(48.9%)은 가석방이 전면적인 형태로 보장되는 종신형인데 반하여 11개국(23.4%)은
가석방을 허용하는 종신형과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종신형의 형태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석방 자체를 전면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종신형제도는 4개국(8.5%)에 불과하다. 따라서 38개국 가운데 15개국이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종신형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39.5%), 23개국이 순수하게 가석방을 허용하는 종신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60.5%).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 전체 국가별 차원에서의 종신형에 관한 개념과 그 기준은
다양하다. 일부 국가에서는 종신형이 ‘평생’을 의미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가들에서는 무기한의 구금형을 의미하는 형벌을 두고 있지만 이것이 수형자가 그 생을 마감할 때까지 구금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자유형의 기본인 범죄자의
재활이라는 중대한 목표가 종신형으로 호명되는 형벌에 있어서도 관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아울러 이들 국가에서는 일반적으로 형법 등 관련 법률을 개정함으로써 적법 절차와 결합되고 사법적으로 통제되는 가석방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종신형제도의 개선을
추구한다. 종신형을 두지 않았다가 새롭게 형벌의 목록에 추가하는 국가가 있기도
하고, 종신형을 유지하는 국가에서도 종신형의 의미가 달리 규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이처럼 유럽의 종신형은 여전히 변모하고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들 국가의 종신형이 하나의 통일된 기준 아래 작동하기를 희망하는 판결들을 제시하여 국가별 종신형에 일관성이 적용되기를 기대하지만, 사형제도의 폐지를 이끌어 왔던 과거의 전통과는 달리 개별 국가의 사회 사정과 범죄정책은
종신형을 하나의 통일된 기준으로 포섭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역동적인
모습이지만 유럽평의회의 종신형제도가 점진적으로 변화해 가는 과정에 있다는 점과
사형의 대체형벌로 바람직한 종신형이 그 기준을 잡고 전체 유럽대륙의 형벌규범체계
안에서 안착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우리나라에의 시사점에서는 현행 무기형 제도에 대하여 반성적 차원에서의
검토를 시도하고, 현행 제도와 향후 종신형 도입에 관련된 입법에 있어서 반영해야
할 사항을 과제로 제시하였다.
제4부
제1장에서는 앞서의 비교법적 고찰을 바탕으로 우리법에의 함의를 제시하였다.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형제 존폐의 거대한 실험장’이라고 할 만한 미국과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사형제 폐지와 대체형벌에 대한 거대한 실험장’인 유럽의 엄밀한 검토를 통해 사형제가 폐지되는 추세를 다시한번 확인하였다. 특히 유럽에서는 가석방이
불가능한 이른바 절대적 종신형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상대적 종신형 즉, 가석방 가능 종신형으로 점차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제2장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발의되었던 8개의 사형폐지특별법안의 현황을 제시하고 각 법안들을 분석하였다. 일견 ‘이상민안’, ‘김부겸안’, ‘유인태안’ 및 ‘주성영안’과
‘박선영안’은 법정최고형을 「형법」상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반면, ‘정대철안’은 앞의 안들과 달리 상대적 종신형을 제안하여 최저 복역기간으로 15년을 설정하였고, ‘유재건안’은 무기징역으로 사형을 전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8개 안 모두 이전에 사형의 확정판결을 받은 미결수들을 대체형의
확정판결자로 대체하였는데 절대적 종신형의 경우 소급하여 확정형을 변경하기 용이하나, 정대철안과 유재건안의 경우 기존 무기징역과의 형평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한 사형확정자의 처우는 기본적으로 가석방을 염두에 두지 않으므로, 가석방이 가능한 형벌을 설정할 시 사형확정자의 처우는 대폭 변화할 것이다.
제3장에서는 국내 대체형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적절한 대체형벌의 종류를 제시하고자 했다. 절대적 종신형은 범죄자의 가석방 가능성을 배제하고 영구적으로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벌이다. 절대적 종신형은 사회방위적 기능 및 국민의 응보감정을
충족할 수 있으며 사형폐지를 위한 과도기적 방법으로 채택될 수 있지만, 수용자들의
존엄성을 침해하며 특별예방 및 재사회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에 대한 비판으로서 상대적 종신형은 형기를 정하지는 않으나 현행 무기징역형의
가석방조건과 차별화되는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이다.
이는 또한 현행 무기징역형과 같은 형태 내지 최저복역기간을 설정한 형태와 같은
무기징역형을 상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사형집행유예제도는 사형을 선고하되
집행을 유예한 뒤 수용자를 심사하여 무기형으로 형의 종류를 변경하거나 유예상태를
유지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러나 가석방・감형이 가능한 무기형과의 차이가 모호하다는 비판 역시 제기된다.
국내외의 모든 논의를 종합해보면, 결국 사형 폐지 이후의 대체형벌의 형태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하는 절대적 종신형이 아니라, 가석방이 가능한 이른바 상대적 종신형의 형태가 되어야 함을 확인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 현행법상의 무기징역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규정하거나 최저 복역기간을 상정한 형태의 가석방이 가능한 무기징역형을 설정하는 것이 대안일 수 밖에 없다.
제4장은 대체형벌로써 이른바 상대적 종신형을 전제로, 가석방 가능 종신형에 대한
쟁점을 심화한다. 물론 가석방 가능 종신형의 모든 입법에서는 최저 복역기간, 가석방
심리의 의무화, 가석방 심리의 주체, 보호관찰 등의 가석방 이후 사후적 조건 설계,
가석방 이후 재범할 경우의 처리 등 다양한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 다만 본 논의에서는 사형 폐지 이후 법정 최고형을 현행과 같은 무기징역형으로 규정하거나 최저
복역기간을 설정한 형태의 가석방 가능 무기징역형이 될 경우를 상정하고 이에 대한
간략한 조건만을 제시하였다. 유럽평의회의 다양한 종신형 사례를 검토하면서 평균수명과 기대수명을 고려하여 최저 복역기간을 정하는 방안과 법체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예컨대 25년의 최저 복역기간 법정하는 방안 등을 제시하였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기존 사형확정자의 법적 지위를 동시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 논의를 위해
먼저 현행 법상 시효 경과에 따른 형 집행의 면제 가능성을 검토하면서, 역시 특별법과
법원의 판결을 통해 기존 사형확정자에 대한 감형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또한 그에
따른 특별법안의 예시를 제시하였다.
마지막 제5장은 위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대안으로서 관련 법률의 제정 및 개정안을
제시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사형 폐지 이후 대안을 현행과 같은 무기징역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방안과 최저 복역기간을 마치고 가석방의 가능성을 부여하는 무기징역형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는 방안 두 개를 제시하고 있다. 이 두개의 가능성을 입법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동시에, 사형을 법정형으로 하는 법률과 그 밖의 절차와 처우에 관한 사형 관련 법률의 전반적인 개정이 불가피하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