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서론
벌금형 제도는 범죄학습효과 및 낙인효과 등의 단기자유형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효과적인 제재로서 오늘날 널리 활용되고 있을 정도로 긍정적 기능 한편으로 경제적 능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형평성 문제와 재범방지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되어 왔다. 결국 이러한 문제점으로 인해 벌금형의 형벌로서의 실효성과 정당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확하고 공정한 양형을 통하여 형벌의 균등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형인자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토대로 양형기준 설정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양형조사를 위한 자료축적이나 접근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벌금형 양형기준제 도입을 논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므로 개별 범죄를 대상으로 하여 양형요인들을 검토하는 것 자체도 큰 의미를 갖는다.
본 연구는 양형의 불균형 문제와 형벌 공정성확보를 위한 벌금형 양형기준제 도입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현행 양형기준제는 일부 개별범죄를 대상으로 하며, 단일 기준이 아니라 범죄유형별로 각각 양형기준이 만들어져 있으며, 1기에서부터 대상범죄를 차례로 선정하여 최근에 이르기까지 대상범죄를 더하여 양형기준을 확대 시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양형기준제와 유사한 방식을 띠고 있다. 현행 양형기준제는 양형현황조사를 토대로 일정범위의 형량범위를 정하도록 하였는데, 현행 양형기준제가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벌금형 양형기준 도입문제는 양형기준제 도입 당시에도 논의되었으나, 차후 양형기준제 시행과 그 평가에 따라 별도로 논의하기로 하였는데, 이제 양형기준제의 성과에 따라 그 도입 여하가 본격적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벌금형 양형기준제에 대한 비교법적 검토와 개별범죄 양형현황 조사를 토대로 벌금형 양형기준제 도입을 위한 기초 정책자료를 제시하는데 그 기본목적을 두었다.
Ⅱ | 비교법적 검토결과
1. 미국
미국 연방 양형기준에 의하면 피고인이 현재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 벌금에 대한 납부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건에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종과 형량결정은 법관의 재량판단 사항으로서, 벌금형이 지나치게 과도하지 않는 이상 법정형의 상한 내에서 정해진 한에서는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 벌금형 양형기준은 행위 뿐만 아니라 행위자 요소 그리고 피해 또는 이득액을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결국 벌금형 선고는 벌금형의 목적, 범행결과와 중대성, 양형기준의 형량범위 등이 고려된다. 피고인의 납부능력은 벌금형의 적정성을 판단하는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된다. 벌금형 선고에서 중요한 인자는 피고인의 무자력 요인이며, 다만 피고인의 무자력 여부가 형벌의 적정성 여부를 판다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 법인에 대한 벌금형도 법인이 더 이상 사업을 영위할 수 없도록 할 우려가 있는 지나치게 과도한 형벌은 수정 헌법 제8조에 반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벌금형 양형기준에 의하면 개별범죄별 위반의 수준이 중요하다. 위반의 수준은 벌금형 이외의 양형기준과 마찬가지로 각 범죄별로 위반행위에 대한 기본 점수(base offense)를 부여하고 행위의 위험성, 결과의 중대성, 기타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점수를 추가하도록 한다. 벌금형 양형기준에서는 위반수준을 반영함에 있어서 전과는 고려되지 않으며, 이후 조정이나 기준 이탈등의 과정에서 반영된다. 재산범죄영역에서는 피해액을 기준으로 벌금액수가 결정되며, 재산적 법익 이외의 경우에는 피해액 내지 피해의 정도 이외의 요인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요인으로 고려된다. 그 다음으로 피해자의 수가 늘어나거나 동일한 피해액이라고 할지라도 피해자를 금전적으로 곤궁한 상태에 빠뜨리는 경우에는 각각 점수가 추가되는 형식으로 위반수준이 결정된다. 산출된 기본점수와 결부되는 위반수준에 대하여 조정을 행하며, 피해자 관련 요소, 행위 시의 역할, 사법방해 및 형집행시 위반행위, 복수의 범죄행위, 책임의 수용과 같은 사항들에 기재된 조정 지침에 따라 위반 수준을 높이거나 낮추는 방식으로 조정을 하게 된다. 벌금형의 상한은 행위결과 즉 피해액이나 이득액은 별도로 결정될 수 있다. 즉 법률의 규정에 벌금액의 상한이 피해액의 2배 또는 이득액의 2배로 규정되어 연방 양형기준의 상한을 넘는 경우에는 판사가 양형기준의 상한을 넘는 기준이탈(departure)을 하여 형을 양정하는 것이 보장된다.
전과의 경우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는지 고려하지만, 이 전과는 징역형의 경우와 달리 기본축을 구성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연방양형위원회는 벌금형량을 결정할 때에는 행위결과, 행위양태, 행위객체가 중요한 고려요소가 되며, 전과는 상대적으로 부차적인 문제라고 보고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전과는 기본 양형요인이 아니라 추후 조정과정에서 반영되며, 전과가 있는 경우 법인에 대하여는 유사한 행위라 할지라도 유책성 점수가 추가되어 벌금형 수준이 가중될 수 있다. 그리고 사후적 요인으로서 자수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 교정비용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다. 다만 자수는 독자적인 감경요인은 아니다. 그리하여 자수 행위자에게 연방양형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는 권고적 효력을 갖는 이상 법원이 이를 적용할 것인가는 재량에 해당하므로 당연한 양형정책일 수는 있다. 특히 앞에서 본 반독점금지법에서도 행위자가 자신의 위법행위를 신고하거나 적극 저지하고 수사에 협조하는 것은 처벌 보다 자유시장경제질서 확보라는 목표하에서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양형기준에서 중요한 고려요인이다. 피해자에 대해 민사적인 보상이나 배상을 했다는 사실이 벌금형 수준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법인범죄에 대하여는 개인과 사업주 내지 법인의 위반행위에 대하여 각각 차등화된 벌금형을 적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행위자요소를 벌금형 양형기준에 적극 고려하고 있다. 즉 법인 범죄에 대해서는 개인이 범한 범죄와는 달리 유책성 점수에 승수를 곱하도록 하는 접근법을 채택하여 기본적으로 단체에 대해 동일한 범죄행위라도 더 높은 벌금형이 가능하도록 구성해 놓고 있다. 유책성 점수가 추가되면 위반수준이 높아지고 이에 상응하여 벌금형도 가중되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벌금액이 감경된다. 그리고 동일한 범죄행위라도 규모가 큰 법인일수록 벌금수준을 높게 설정하여 소위 유책성 점수를 추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점은 법인에 대하여 개인행위자와 동일한 벌금 법정형을 규정하고 있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사망의 경우 법인에 대하여는 –개인행위자에는 없는- 가중적 요인으로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법인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제에 의하면 법인범죄의 위반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행위의 중대성, 이득액 및 손해액 등이다. 법인범죄의 위반 수준에 따른 벌금액에 관한 양형기준표가 제시하는 벌금액에 단체가 범죄로 취득한 이득액을 추가하여 벌금액을 산정하기도 한다. 법인이 피해자에 대한 보상으로 지불된 액수가 있다면 이는 차감하여 벌금액이 정해진다. 법인의 경우 양형기준은 조직 내에 준법 및 윤리프로그램(compliance and ethics programs)을 구축해 놓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동일한 행위에 대해서 감경적 조정을 할 수 있도록 하여 벌금형 수준을 낮출수 있다.
미국의 양형기준에 의하면 직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에 대하여 기본 위반수준을 규정하고 있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직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사망에 이른 경우에는 법정형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그리고 근로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에 1급 살인죄 죄책을 지는 경우와 2급 살인죄 죄책을 지는 경우 기본 위반 수준이 각각 43점과 38점이고 과실 책임을 지는 경우에는 12점이다. 과실책임의 경우 사망한 피해자 각각에 대하여 부과되며, 피해자가 복수일 경우에는 합산한다. 워싱턴 주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고용주가 고의로(wilfully and knowingly) 행한 위법행위로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중경죄(gross misdemeanor)로 분류되며, 기본적인 법정형은 100,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이나 6개월 이하의 구금형에 처한다. 재범에 대해서는 200,000달러 이하의 벌금형이나 364일의 구금형에 처할 수 있다.
2. 영국
영국의 양형기준제는 자유형 뿐만 아니라 벌금형에도 적용되며 다만 개별 범죄군별로 양형기준이 차이가 있을 뿐이다. 현재 영국에서 개별 범죄별로 양형기준이 설정되어 있는데, 총 25개의 범죄가 그 적용대상이 되어 있다. 양형기준이 설정되지 않은 범죄의 경우에는 일반적 공통기준을 참조하여 형이 선고된다.
영국 양형법상 벌금형 양형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해당 범죄의 중대성이며, 중대성은 비난가능성과 범행결과 즉 피해정도로 결정된다. 양형법 제63조에 의하면 범죄의 중대성은 (a) 위법 행위에 있어서 범죄자 자신의 귀책정도(culpability), 그리고 (b) 피해(harm) 이며, 피해에는 (i) 실제로 야기된 피해 (ii) 야기하고자 의도한 피해, 또는 (iii) 야기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었던 피해 등이 포함된다. 중대성 평가는 양형기준이 적용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서 이에 따라 기본 수준이 결정되고 이후 가중/감경/인자들을 개별범죄의 특성을 토대로 반영하여 최종 양형이 정해진다. 이러한 기본적인 양형구조 즉 범죄의 중대성 평가를 기준으로 하여 가중/감경 요인을 평가하는 방식은 영국 양형기준제의 핵심이다.
영국 양형법에 따르면 치안법원 대상범죄인 약식기소범죄에 대하여는 벌금액 상한이 없으며, 벌금액 수준은 5등급으로 나누어진다. 형사법원의 경우에는 양형법 제129조 제4항에 따라 벌금형 양형기준이 정해져있으며, 이 경우 벌금액 상한이 없어 사실상 무제한의 벌금형 선고가 가능하다. 통상 벌금형 부과시 벌금액은 피고인의 주급을 기준으로 정하되, 권고형량범위는 주급의 500-700% 범위내에서 결정되며, 통상 선고벌금액은 주급의 600% 범위내에서 정해진다.
영국의 경우 양형법상 벌금형 선고시 범죄자에 대한 경제상황을 조사하도록 되어 있다(제124조). 즉 벌금형 부과시 피고인의 경제력 반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벌금형 양형인자 중 중요한 요인은 범죄의 중대성이며, 범행의 중대성은 개별범죄별 유책성 평가와 피해 정도를 반영하여 결정된다.
본 연구의 대상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은 범죄의 중대성을 기준으로 4단계 즉 매우 높음, 높음, 중간, 낮음 등으로 나누어진다. 피해정도 또한 4단계로 나누어진다. 반면 기업살인 및 과실치사법 위반범죄에서의 범죄의 중대성은 A 또는 B로 평가된다. 양형 가중요인으로서는 전과여부와 (개인)보석상태에서의 범행인지 여부, 안전의무를 다하였는지 여부, 이득을 취하였는지 여부, 고의로 행하였는지 여부, 그리고 보건안전 기록의 양호 여부 등이 고려된다. 감경요인으로서는 전과 없음, 자발적 문제해결 조치 여부, 수사협조, (개인)모범적인 행동, 낮은 유책성, 부양가족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등이 고려된다. 이들 가중 및 감경인자는 동일 범죄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규정하고 있는 양형 기준에서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다.
Ⅲ | 선거범죄 양형현황 조사결과 및 정책제언
1) 선거범죄 벌금형 양형기준제 시행 현황
양형기준이 시행된 2020. 2. 1. 이후부터 2021. 6. 30.까지 선고된 제1심 사안 가운데 공직선거법 위반만이 인정되고 형종으로 벌금형이 선택된 판결문 총 324건 중 피고인 404명을 대상으로 한 벌금형 선고현황에 대한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선거범죄의 경우 대부분 양형기준이 적용되고 있으며, 선거범죄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이 현재 양형실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인다.
둘째, 선거범죄에 대한 벌금형 선고기준의 경우 일부 범죄에 대하여만 벌금형이 선고되고 있다. 선거범죄로 벌금형이 선고된 피고인 404명 중 201명(49.3%)에 대해서만 양형기준에 따라 벌금형이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범죄 양형기준의 초점이 후보자나 당선인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아 당선무효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맞춰져 있으므로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이나 선거운동을 돕는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투표용지 촬영이나 선거운동용 물품 탈취, 벽보․현수막 등 설치방해․훼손․철거 등의 선거범죄 유형에 대해서까지는 양형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벌금형 양형기준과는 별도로 양형실무상 확립된 기준들이 벌금형 선고에 고려되고 있다. 예를 들어 양형위원회의 권고영역에는 감경․기본․가중영역의 세 가지밖에 없으나 한층 감경 또는 가중하기 위하여 복수의 감경인자 또는 가중인자가 있는 경우 특별감경영역 또는 특별가중영역으로 분류하고 양형의 이유에도 제시하는 것이나, 투표한 용지를 촬영한 경우(공직선거법 제256조 제3항 제2호 사목, 제166조의2 제1항)와 같이 빈번하게 발생하나 양형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선거범죄에 대해서는 50만원을 전후하는 벌금을 선고하는 경향이 양형실무상 드러나는 것을 들 수 있다.
2) 정책제언
첫째, 후보자나 당선인이 1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아 당선무효가 될 수 있는 경우에 집중하여 벌금형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있는데,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이 마련되어 있다면 투표에 참여하는 국민이나 선거운동을 돕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벌금형 양형기준이 마련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100만원 이상의 벌금 선고가 당선무효로 이어져 보궐선거 등의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우려를 갖고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양형기준을 준수하여 벌금이 선고될 수 있는 데 반해, 벽보․현수막 등 설치방해․훼손․철거 등의 선거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이러한 심리적 저지선 없이 100만원을 초과하는 벌금이 선고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둘째, 당선인의 경우 선고에 고려한 양형인자가 제외되지 않았는지를 검토하는 제도적인 절차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판결문 검토 결과 양형기준을 적용하여 벌금형을 선고한 경우에도 선고에 고려한 양형인자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었다. 특별양형인자에 해당하는 양형인자의 미고려 또는 제외는 선고되는 벌금액을 낮추고, 이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범행하였거나 선거일에 임박한 경우에도 100만원 미만의 벌금이 선고되어 당선이 유지되는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셋째, 선거범죄 양형기준을 실질적으로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 2020. 2. 1. 시행된 선거범죄 수정 양형기준은 매수 및 이해유도 유형의 벌금 상한액을 상향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였으나, 이 절의 분석결과는 수정 양형기준 시행 이후 벌금형 선고가 이루어진 전체 선거범죄 중 수정 양형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사례 자체가 적어 양형기준 수정이 부정선거를 방지하고 공명선거를 보장하겠다는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를 뒷받침하는 데 한계가 있었음을 보인다. 시행 이후 16개월간 발생한 선거범죄 중 양형기준이 적용되어 벌금형이 선고된 피고인 중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난 유형은 기부행위(2-1유형, 74명) 및 선거운동방법 위반(4-2유형, 84명)이었으며, 이 두 유형이 양형기준이 적용되어 벌금형이 선고된 선거범죄 피고인의 78.6%를 차지했다. 따라서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기부행위 및 선거운동방법 위반에 대한 벌금 상한액을 높이는 것이 선거범죄 양형기준을 실효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일 것으로 보인다.
Ⅳ | 벌금형 양형기준 설정 검토시 고려사항
1) 벌금형의 양형기준 도입여부에 대한 검토에 있어서 개별적 독립적 양형기준제와 원칙적으로 대상 범죄 전체에 통일적인 양형기준을 설정하자는 두 개의 입장이 있을 수 있다. 징역형 양형기준과의 형평성과 이미 갖추어진 양형기준제를 형벌에 따라 각각 결정할 수 없으며, 더욱이 징역형과 벌금형은 선택형이든 부과형이든 같이 규정되어 있는 범죄가 대부분이어서 개별적 양형기준제를 유지하기로 한다.
개별범죄별 양형기준을 보면 법정형의 범위보다 축소된 새로운 형량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미국과 영국 모두 마찬가지이다. 물론 구체적인 내용에서는 차이가 있다. 법정형 범위 내에서 양형기준을 정하므로 우선 법정형의 범위가 지나치게 가중되어 있거나 포괄적인 경우에는 이를 기반으로 한 양형에서도 합리적 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행법상 법정형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광범위하고, 나아가 특별형법상 구성요건 신설 등을 통해 가중처벌하고 있는 현행법 체계 하에서 당연히 법정형 정비필요성은 크다. 법정형 정비필요성은 양형기준제 시행에 따라 현행 법정형 체계가 갖는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시급하다.
2)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 특히 법인에 대한 벌금형이 형벌효과를 제대로 거두었는가에 대하여 의문이 많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상 벌금액 상한은 원칙적으로 위반행위를 한 자연인에 대한 벌금액의 상한과 동일하다. 이러한 현행 양벌규정 방식에 비추어 법인에 대한 벌금형 상향조정이 과연 법인의 형사책임에 대한 현행법의 법리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있으, 여기서는 법리문제보다는 법인의 양벌규정상 벌금형의 양형 진단을 통해서 벌금형 양형기준 설정을 위한 기초자료를 제시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3) 양형기준제 설정시 종래 양형실무에 대한 통계분석을 기초로 양형기준을 설정하였다는 점을 고려하여 대상범죄를 선정하였으며, 이를 조사 분석하여 개별적 양형인자를 도출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연구방법은 종래 양형실무의 답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재차 반복하는 단점을 가질 수 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개별범죄별로 양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밝혀내어 주요 양형인자를 도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양형기준 마련을 위한 초석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Ⅴ | 산업안전보건법 양형현황 조사결과 및 정책제언
1) 본 연구에서 벌금형 양형기준 도입을 위해 우선적으로 법인에 대한 벌금형 기준이 중요하다는 현실적법리적 문제의식하에 실태조사 대상범죄를 산업안전보건법으로 하였다. 무엇보다 산업안전보건법상 법인에 대한 낮은 벌금형과 미비한 처벌효과가 사회문제가 되는 이상 이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 정책은 시범적으로나마 매우 의미 있는 선제적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대상범죄로 선정한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2) 산업안전보건법 양형현황 분석과 이를 토대로 한 주요 양형인자를 도출하여 향후 산업안전보건범죄와 관련하여 벌금형의 양형기준 제시를 위한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한데 있으므로 본 연구방법으로서는 산안법 위반에 대하여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를 중심으로 판결문 분석방법을 채택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건에 대한 양형기준은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설정된 것이기 때문에 산안법 양형현황이 갖는 문제점을 그대로 갖고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행법 체계를 살펴보면 법인범죄에 대하여는 개인과 달리 취급하고 있고, 처벌도 양벌규정에 따라 벌금형을 과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 법인에 대하여는 개인과 동일한 액수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이 연구에서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이후 법인에 대한 벌금형 현황을 그 이전과 비교하여 보고, 산업현장에서의 사고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할 때 주로 어떤 요인이 유의하게 고려되고 있는지, 향후 산업안전보건법 벌금형 양형기준제를 도입할 때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를 밝혀보고자 하였다.
3) 대상 판결문 선정작업에 있어서는 1심 판결문을 분석범위로 하여 첫째 업무상 과실치사상을 제외한 다른 법률 위반이 인정되지 않은 사례로만 분석범위를 제한하였으며, 둘째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으로 ‘양벌규정’이 적용된 건만을 분석대상으로 하여 법인과 개인이 동시에 처벌된 건을 대상으로 하였다.
‘판결서 인터넷 열람 서비스’를 이용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 양벌규정이 적용되어 법인이 처벌대상이 된 제1심 사건 전체를 수집하였다. 검색범위는 2021년 6월 30일 이전에 선고된 제1심으로 했고, 그 결과 총 134건의 사건이 추출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134건의 사건은 전부가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 중인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인 것은 아니다. 이 중 93건(69.4%)은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전에 선고된 건이고, 41건(30.6%)은 시행 후에 선고된 건이다. 134건의 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이외에 업무상 과실치사 사건이 경합된 건은 87건(64.9%), 업무상 과실치상 사건이 경합된 건은 19건(14.2%)이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 법인이 처벌대상이 된 사건 중에서 약 3분의 2에 이르는 대다수의 사건이 이른바 ‘과실’이 결과적가중범의 형태로 가중결합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1982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중에서 특히 법인까지 처벌받은 사건은, 대부분 산업현장에서의 안전조치 소홀이라는 과실 때문에 노동자가 사상을 입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평가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함께 업무상과실치상과 업무상과실치사가 모두 인정된 건도 134건 중 13건(9.7%)로서, 1982년부터 2021년 현재까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법인 사건 10건 중 1건이 복수의 노동자 사상이라는 중한 인명피해를 동반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사건 내에 복수의 법인 기업이 처벌대상이 된 사건도 포함되어 있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인이 처벌받은 사건 134건에서 처벌대상으로 검토된 법인의 수는 모두 172개였다. 복수의 법인에 대해 선고가 이루어진 경우 일부 법인에 대해서는 유죄가 선고되었고, 일부 법인에 대하여는 무죄가 선고된 경우도 있다.
법인의 대표자나 사업주와 같이 자연인인 피고인에 유죄가 인정되어 양벌규정으로서 법인에 대해서도 형사책임 여부가 검토된 경우, 법인의 대표자는 유죄이지만 법인 자체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즉, 처벌대상으로 검토된 법인 172개 중 1개 법인은 선고유예를 받았고, 21개 법인은 무죄선고를 받았다. 그러므로 유죄선고를 받은 법인은 150개이며, 산업안전보건범죄 관련 법인에 대한 벌금액결정에 주로 어떤 요인이 고려되는지를 판단할 때 이들 150개 법인을 대상으로 하여 분석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법인 150개에 대해, 판결문을 중심으로 코딩분석하였다. 이 때 코딩을 진행함에 있어서는 집행유예 참작사유를 기준으로 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범죄의 경우 벌금형에 대해 양형기준이 없기 때문에, 집행유예 참작사유 여부를 판결문에서 법인에 대한 내용을 개별 확인하여 코딩하였다.
또한 시행 중 양형기준에는 반영되어 있지 않으나, 산업안전보건범죄의 특성을 고려하여 판결문에 나타나는 정보들이 있다. 예를 들면 해당 법인이 시공을 하도급받았는지, 노동자 사망이 발생한 경우 유족과 합의가 이루어졌는지, 산업재해 발생 후 안전조치가 이루어졌는지 같은 것들이다. 그러므로 양형실무에서 고려되어 온 이들 항목들의 실증적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이러한 항목들에 대해서도 코딩하였다.
3)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 및 양형현황
산업안전보건범죄의 양형기준과 관련하여, 과실치사상 범죄와 산업안전보건범죄로 크게 구분하고 각각의 유형에 대해 감경, 기본, 가중의 3단계 권고형량을 제시하고 있다. 2021. 7. 1. 산업안전보건법 수정 양형기준 시행 후 과실치사상범죄와 산업안전보건범죄로 크게 구분한 후 각각의 범죄유형에 대해 감경, 기본, 가중의 3단계 권고형량을 제시하고 있다. 과실치사, 업무상과실・중과실치상,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에 대한 권고형량은 변함없는 가운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형을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 사업주의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의 세 가지로 세분화하였다. 종래 과실치사상범죄의 경우 선고되는 형종은 징역형 또는 금고형이었으나, 2021. 7. 1. 시행된 양형기준에 따른 과실치사상범죄는 금고형으로 하며, 산업안전보건범죄 중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3유형) 범죄 확정 후 5년 이내 3유형 범죄를 다시 저지른 경우, 형량 범위의 상한과 하한을 1.5배 가중하도록 하였다. 과실치사상 범죄 양형인자는 종래 양형기준과 비교하였을 때, ‘피해자에게도 사고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상당한 과실이 있는 경우’를 특별양형인자 감경요소에서 삭제하였다는 것 외에 차이가 없다. 그리고 집행유예 선고에 있어 수정 양형기준은 긍정적인 주요참작사유에서 ‘피해자에게도 사고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상당한 과실이 있는 경우’를, 긍정적인 일반참작사유에서 ‘피고인이 고령’임을 삭제하였다는 것 외에 차이가 없다.
양형인자에는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가 있으며 ‘특별양형인자’와 ‘일반양형인자’ 모두 행위요소와 행위자요소를 따로 구분하고, 감경요소에는 “사고 발생 경위에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경우”, “경미한 상해가 발생한 경우(2유형)”, “청각 및 언어 장애인”, “심신미약(본인책임없음)”, “처벌불원(피해 회복을 위한 진지한 노력 포함)”, “상당금액 공탁”, “보험가입”,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없음”이 제시되어 있다. 또한 가중요소에는 “중상해가 발생한 경우(2유형)”, “주의의무 또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한 경우”, “동종누범”, “중상해가 아닌 중한 상해가 발생한 경우(2유형)”, “사고 후 구호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경우”, “범행 후 증거은폐 또는 은폐시도”, “이종누범, 누범에 해당하지 않는 동종전과”가 제시된다. 수정 양형기준에서는 감경요소에서 “피해자에게도 사고 발생 또는 피해 확대에 상당한 과실이 있는 경우”는 제외되었다.
4) 분석결과
4)-1 양형기준의 적용여부
2016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이 시행된 지 상당한 기간이 경과되었으나, 분석결과 대부분의 판결문이 양형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선고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사업주나 대표자 등 자연인인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적고, 반면 집행유예나 벌금선고가 대다수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결과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은 법인에 대한 기소건수가 가장 많은 특별법으로서 이들 사례 분석을 통해 법인범죄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의 정책 방향이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점에서 그 의미는 적지 않다.
4)-2 선고형종
법인에 선고된 벌금액을 살펴보기 위해 사업자나 대표자 등 피고인에 선고된 형종(무죄, 벌금, 집행유예, 실형)에 따라 법인에 선고된 벌금액이 어떻게 다른지를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법인 150개 중에 사업주나 대표자 등에 실형이 선고된 예가 상당히 드물었다. 대부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인과 자연인인 사업주 또는 대표자가 모두 기소되면, 사업주나 대표자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인은 벌금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많았다.
4)-3 벌금액 분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법인에 선고된 벌금액 분포를 보면 최저 벌금액과 최고 벌금액의 편차가 컸고, 가장 빈번하게 선고된 벌금액은 500만원(41개, 27.3%)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1,000만원(21개, 14%) 순이었다. 그 다음으로 법인에 선고된 평균 벌금액 요인 기준으로 분석해본 결과 이들 기준에는 ‘양형기준제 시행’,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업무상 과실치사 경합’, ‘대표자 등 자연인 피고인수’, ‘법인인 피고인 수’ 이 적용되었다. 코딩 분석결과 이러한 기준 중 어떠한 기준에 의해서도 그 전후에 유의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양형기준제 시행이나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형량강화 등의 여부가 법인처벌시 벌금액수를 크게 감소시키거나 또는 증가시키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4)-4 벌금액에의 영향요인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법인이 벌금형을 부과받을 때, 그 벌금액수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요인을 빈도수로 살펴보면 양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감경요인으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것은 피해자 또는 유족과의 합의(50.7%)였다. 그 다음으로는 진지한 반성(32.7%), 형사처벌 전력없음(29.3%), 처벌불원(14.7%), 안전관리 보완(14%)이 양형에 유리한 정황으로 파악되었다. 반면 양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가중요인으로 가장 높은 빈도를 보인 것은 5년 이내의, 금고형의 집행유예 이상 또는 3회 이상 벌금(집행유예 포함)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동종전과(15.3%)였다.
산업안전보건범죄 위반 법인에 대해 선고된 벌금액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순서형 로지스틱 회귀분석 결과, 다른 요인들의 영향력을 통제했을 때 벌금 선고액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 요인은 다음과 같다.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을 마련하여 적용하기 시작한 2016년 이후, 즉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 적용 이후 벌금액은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산업안전보건범죄와 업무상과실치사가 경합된 경우, 벌금액이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즉,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업무상과실치사가 경합되었을 때 벌금액이 감소하였다.
사업주 또는 대표자 등 자연인인 피고인의 수가 많아질수록, 벌금액이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법인인 피고인의 수가 많아질수록, 벌금액은 유의하게 감소하였다.
‘부정적 주요참작사유’와 ‘부정적 일반참작사유’가 고려될수록 벌금액은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이러한 ‘부정적 주요참작사유’에는 주의의무 또는 안전·보건조치의무 위반의 정도가 중한 경우, 동종전과가 있고, ‘부정적 일반참작사유’에는 피해회복 노력없음이 있다.
‘긍정적 주요참작사유’와 ‘긍정적 일반참작사유’는 전반적으로 벌금액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리고 ‘긍정적 일반참작사유’ 중 법인이 산재보험에 가입하고 있어 피해자나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에게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었던 경우 역시 벌금액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특히, ‘긍정적 일반참작사유’로서 처벌불원은 일반적으로 형의 감경을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실제로 법인에 선고되는 벌금액이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기타 요인’ 중 피해자 또는 유족과의 합의는 법관이 양형이유로는 빈번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벌금액 변화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또한 피해자 또는 유족이 엄벌을 호소하는 것 역시 벌금액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산업재해 발생 이후 현장설비를 강화하는 등의 사후약방문식 안전관리 보완도 벌금액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도 상당한 과실이 있는 경우도 벌금액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5) 정책제언
2016년부터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은 이미 징역형이 선고된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양형기준을 설정하였기 때문에 양형현황의 문제점을 그대로 갖고 출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연구 결과 실제 사건에는 이들 양형기준이 적용된 사례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이후 전부 개정되어 시행되고 있는 개정 산업안전보건법도, 법률개정의 취지가 양형실무에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탓인지 법인에 대한 벌금 선고액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벌금을 선고받은 법인 150개 중, 대표자나 사업주 등 자연인인 피고인에게 벌금형이 선고된 경우는 61개였는데, 그 중 5개 법인에서만 자연인 피고인보다 법인 피고인에 대한 벌금액수가 높았다. 나머지는 모두 법인에 대한 벌금액수가 오히려 자연인 피고인보다 낮거나, 비슷했다. 이는 법인에 대해서는 같은 액수의 벌금형이라고 해도 위하력이 낮아서, 법인에 대해 개인보다 높은 벌금형을 부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대한 반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인인 행위자보다 적거나 같은 액수의 벌금이 법인에 선고되는 경향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법인의 규모가 양형의 이유나 벌금액 결정에서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음은 법인법죄에 대한 양형기준제가 갖는 중요한 문제임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결과이다. 자본과 자산의 집적정도가 큰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을 중소기업과 경제력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같은 선상에서 벌금형을 선고하는 것 자체가 위반 정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양형기준에 의하면 법인의 경제적 규모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양형요인임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법인의 규모나 경제력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양형실무가 계속된다면 산업안전보건범죄 수정 양형기준이 시행되거나, 새로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다 하더라도 법인에 대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고 보장하기 어렵다. 실증적 연구결과에 비추어 산업안전보건범죄 위반 법인에 대해 현실적인 처벌이 가능하도록 벌금액을 정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연인인 피고인과는 별개로 법인을 처벌대상으로서 양형범위에 반영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 또한 미국과 영국의 법인범죄에 대한 처벌에서 법인을 개인 행위자와 별도로 양형기준을 정하고 그 규모에 따라 벌금액수가 높게 정해진다는 점을 고려할 만하다.
현행 양벌규정으로만은 이러한 법인에 대한 처벌의 난제를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산업안전보건 현장에 있어서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최근 도입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은 특별법 영역에서라도 산업안전보건법과 함께 보다 현실적인 법인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관련 법률 및 양형기준을 정비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 중에서도 법인에 대한 실제 처벌은 재산형인 벌금형이 거의 유일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법인에 대한 벌금형 양형에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판결문 코딩 분석 결과 2016년 이후 산업안전보건범죄에 대해 일반적 양형기준이 도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를 이용하여 형을 선고하는 비중이 높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더라도 법인에 대하여는 현실적이고도 실효적인 벌금형 양형기준 설정이 요구된다.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에 대한 입법론적 관점에서도 벌금형 양형기준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망의 경우 과실치사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산재사망이 개인의 주의의무에 위반에 따른 업무상 과실치상죄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사망은 단순한 개인의 과실에 의한 범죄가 아니라 고의에 의한 기업범죄의 성격을 가지며, 사망에 대한 양형기준에서 제시된 징역 1년-2년6월은 모두 집행유예가 가능하고, 가중, 특별가중, 다수범의 경우에도 집행유예가 가능한 범위에 있어 특별가중인자로 분류한 의미 자체가 퇴색되는 것이라고 한다. 나아가 사망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에서 그 대상이 매우 좁게 설정되어 있어 실제 현장에서 중요한 중대재해 발생현장 훼손이라든가, 조사방해, 재해사실은폐, 교사공모 등은 양형기준에서 제외되어 있다. 더욱이 사망에 대한 양형기준에서 벌금형에 대한 별도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범에 대한 벌금형 양형기준 설정이 시급한 이유이다.
이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산업안전보건법의 경우 징역형 양형기준이 2016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제 시행 전후 법인범죄에 대한 처벌 특히 선고형량이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에 대한 실증연구는 거의 없다. 양형현황에 대한 실증연구 자료는 개별범죄의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기초자료로 활용되어 온 점에 비추어본다면 산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양형현황을 분석해보는 것은 정책활용도 측면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물론 충실한 자료확보가 우선될 경우에 해당되는 말이다. 향후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양형기준제 마련을 위해 전면적으로 개별범죄에 대한 양형자료 조사가 가능할 수 있겠지만, 본 연구에서는 우선 양형자료에 접근하여 이를 확보하는 것 자체가 쉬운 작업이 아님을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자료를 확보하여 양형현황을 분석해보고 최소한의 분석결과라도 제시해보고자 한 점은 본 연구의 큰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양형기준에 대한 계량적수치적 평가는 성공적인 양형기준제 설정 및 시행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행 양형현황에 대한 실증연구는 대부분 양형기준제 준수율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개별범죄에서의 양형인자를 추출하여 선고형량이 양형기준제의 도입목적에 부합하는지 하는 점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으며, 이 또한 자료확보 및 분석 방법의 어려움으로 쉽지 않다. 향후 자료확보와 연구방법의 활용으로 실질적인 양형기준제 평가작업이 행해질 것을 기대해본다.
Ⅵ | 연구결과의 활용가능성
1) 본 연구결과에 대하여 첨언하고자 할 것은 현행 자유형에 대한 양형기준제처럼 결정적인 일반/가중/감경사유 (안)을 제시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지적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본 연구를 통해 특정한 범죄의 벌금형 양형기준제를 제시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기대할 수도 없으며, 더욱이 이러한 기대야말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하면 현행의 자유형 양형기준이 단순히 선행문헌연구와 양형규정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양형기준 마련의 통상적인 방법 즉 종래 양형현황을 조사하여 그 조사결과를 토대로 일반요인 및 가중감경요인을 분류하고 형량범위를 설정하는 등 제도화된 것으로서 그 작업은 방대하고 수집자료 또한 어마어마할 것이다. 법원 조직 전체의 협조가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러한 종전 양형현황 조사를 통해 양형기준이 마련된 것이므로 그나마 양형기준제가 권위를 갖고 실무에서 무리 없이 적용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본 연구방법과 범위에서 조사상의 어려움과 한계를 밝힌 바 있는데, 단지 몇백건의 사례만으로는 양형기준을 도식화하는 것은 그 자체 해서도 안 되며,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자문회의 결과에서도 가능한 범위 내에서 양형요인이 밝혀진다면 그나마 다행아닌겠는가 하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개인이(물론 국책기관 소속원이긴 하지만) 단순 몇건으로 그럴듯한 양형기준과 양형요인을 제시한다면 그 누가 이를 신뢰할 것이며, 또 몇백건만으로 만든 양형기준안이 과연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본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인적 물적 제한된 범위내에서 협조 조차 꺼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위와 같은 연구결과를 도출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안법 양형기준 적용현황으로 보면 법인의 규모, 피해액 내지 피해정도 등의 요인 조차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형위원회에서는 벌금제 양형기준제를 마련하기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2022년부터 논의 시작하겠다는 내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어떤 범죄를 대상으로, 어떤 기준으로 형량과 형량범위를 결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 단순히 이미 조사된 폭행이나 음주가 아니라 – 이들 범죄 유형의 경우 어느 정도 수치화 계량화되어 있는 측면도 있어 양형불균등성 문제가 덜 제기되는 영역이라고 한다- 형벌로서의 벌금형의 의미가 가장 문제되고 있는 법인범죄를 중심으로 하여 선제적 시도를 했다는 점은 양형위원회의 향후 논의에서 중요한 기초자료로 쓰일 뿐만 아니라, 대상범죄 및 권고형량 범죄 그리고 중요 양형요인을 도출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2) 향후 입법론으로는 양형기준제의 평가와 목적을 명시하는 점에 대하여 논의도 필요하다. 양형기준 설정 및 시행에 있어서 원래 도입의 목적에 맞게 시행되고 있는지,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하였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현행 양형기준제는 법원조직법에 양형위원회 규정을 두는 방식으로 양형기준 설정이 법제화되어 있으나, 양형기준에 대한 별도 평가작업의 중요성에 대하여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이미 살펴본 양형기준법안(의안번호 8019, 박민식 의원 대표발의, 2010.3.30.)은 당시 벌금의 액수를 정할 때에 고려할 요인을 담아두었을 뿐 아니라 비합리적인 양형편차의 축소, 예측가능성의 증대 등 양형기준의 제정 목적을 명시하도록 하여 양형관행의 개선방향을 제시하였으므로, 이런 점에서 참조할만하다. 마지막으로 1995년 형법개정안 논의당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벌금형 양형은 피고인의 경제상태를 고려하여 결정한다“는 일반규정을 둘 것인가 하는 점도 향후 입법론으로 좀 더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