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정책연구
이 책은 『Critical Issues in Restorative Justice』(Howard Zehr/ Barb Toews 편저, 2004)를 완역한 것이다. 여기에는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원리, 이해당사자, 정부와 체계, 실천과 실천가들, 토착적‧종교적 전통 및 사회정의라는 6개의 대주제 아래 회복적 정의의 주요쟁점들에 대해 비판적 논의를 펼치고 있는 31편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들은 회복적 정의가 논의되고 있는 세계 전역을 아우를 만큼 넓은 지역에 걸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작성되었다. 회복적 정의를 지지하는 교수, 실천가, 작가뿐만 아니라 회복적 정의의 진영 밖에 있는 사람들도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옮긴이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회복적 정의에 관한 방대하고도 다양한 시각과 지평을 보여주리라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우리말로 소개하고자 마음먹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restorative justice’는 통상 ‘회복적 사법’이라 불리고 있지만, 옮긴이는 이를 ‘회복적 정의’라고 번역하였다(물론 맥락에 따라 ‘회복적 사법’이라고 표기한 부분도 없지 않다). 회복적 정의 운동이 최초에 형사사법의 영역에서 비롯되었고 아직까지도 여전히 논의의 중점은 그 곳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 관련 논의에서 회복적 정의는 형사사법 영역을 넘어 학교, 가정, 직장 단위의 갈등해결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국제적인 평화의 수립‧유지를 위한 차원에서도 적용되는 등 일상적 삶의 영역으로 그 적용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회복적 정의를 그러한 차원까지 포함하여 다루고 있는 글들도 적지 않다. 이에 옮긴이는 이러한 현상을 충분히 포섭할 수 있으려면 ‘회복적 사법’보다 ‘회복적 정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고 판단하였다.
주지하다시피 회복적 정의는 서구사회와 그에 영향을 받은 현대사회에서 범죄의 주된 대응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응보 위주의 형사사법 및 그에 내재한 비생산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여 전통적인 형사사법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생겨났다. 세계적으로 회복적 정의에 관한 운동이 시작된 것은 대략 40여 년 전의 일이다. 특히 1990년 이후부터는 급격한 성장세를 보여, 산발적인 몇몇 실험적 프로젝트에 불과하던 것이 사회운동으로, 이어 괄목할만한 실천과 연구의 영역으로 발전해 왔다. 반면 그러한 발전의 속도에 못지않게 혼란도 증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가령 ‘회복적 정의가 무엇인지’ 혹은 ‘회복적 정의는 어떤 형태의 실천을 포함하는지’를 둘러싸고 아직도 논의가 끊이지 않고 있음을 보면, 회복적 정의의 쟁점들을 둘러싼 근본적인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회복적 사법’의 이름으로) 회복적 정의에 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00년 이후의 일이다. 그 동안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가진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회복적 정의의 개념과 원리들이 소개되고, 관련 프로그램의 도입 여부나 제도화에 관한 논의들이 전개되어 왔다. 그 결과 최근에는 회복적 정의의 중요한 실천모델의 하나에 기대어 ‘형사조정’을 법제화하는 성과를 낳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간의 관심과 노력은 몇몇 정형화된 실천모델의 제도화 문제나 회복적 측면에서 기존 제도와의 이념적 연결고리 찾기 등 주로 지엽적인 차원에 치중되었을 뿐, 회복적 정의의 전체적 문제상황과 지평을 바라보는 차원에서 논의가 진행되지는 못했다. 회복적 정의의 이념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러한 이념을 기존의 제도와 연계시켜 해명하거나 회복적 이념에 입각한 프로그램이나 제도 등의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것도 물론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만일 회복적 정의의 근본적 방향성과 전체적 지평에 관한 적절한 통찰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비록 그러한 작업이 일정한 외관상의 성과는 나타내 보일지라도, 회복적 정의와 무관한 것이 되거나 그 근원에서 벗어나고 말 가능성도 적지 않다. 그렇기에 제도화에 앞서 혹은 그와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할 핵심과제는 회복적 정의를 둘러싼 이론적‧실천적 쟁점들을 제대로 포착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우리의 의사소통공동체에서 그와 관련된 논의를 활성화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은 그 동안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어 온 회복적 정의에 관한 논의와 전개과정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혁신을 혁신할 필요성’에 기반하여 ‘회복적 대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진 논의들을 묶은 글모음집이다. 여기에는 회복적 정의의 기원과 역사, 회복적 정의의 개념, 원리, 가치 및 목적, 회복적 정의의 성격과 특징, 회복적 정의의 이해당사자(피해자, 가해자, 공동체 및 기타)와 그 역할, 회복적 정의에서 국가(또는 정부), 전문가, 실천가 및 입법의 역할, 회복적 정의의 실천모델 등을 비롯하여, 회복적 정의와 토착적‧종교적 전통의 관계, 회복적 정의와 사회정의의 관계, 회복적 정의에서 영성의 역할 등 근원적인 쟁점들에 관한 비판적 논의가 담겨 있다. 범죄와 그에 대한 기존 형사사법의 대응을 비판하고 회복적 시각에서 새롭게 기획하려는 시도뿐만 아니라, 이를 넘어 범죄를 유발하는 사회적 원인과 구조까지 문제 삼거나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 회복적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근본적 성찰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비록 출간된 지 10년이 지난 것이긴 하지만-회복적 정의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근본적인 성찰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들, 특히 회복적 실천의 반열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회복적 정의와 실천에 관한 새로운 도전을 주면서 각자의 현주소를 되짚어보도록 하는 데 매우 유익한 안내서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