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가 되면 우리 사회는 정치 과잉이라 할 만큼 사회가 온통 선거분위기로 들썩인다. 올 해는 총선과 대선이 겹쳐있어 연초부터 선거열기가 달아올랐고 연말 치러질 제18대 대통령선거를 겨냥한 정당간 기세싸움과 당내경선 후보들 간의 경쟁이 한 치양보 없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선 모 정당의 불법적인 경선선거인 모집이 문제가 되어 관련자가 자살하였는가 하면, 다른 모 정당 비례대표후보 경선에선 유령선거인과 대리투표 등 광범위하고 총체적인 투표부정이 발견되어 검찰의 수사와 더불어 분당의 위기로 치닫는 격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경선관련 잡음은 국회의원선거에 그치지 않고 올 12월의 대통령선거 정당후보경선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경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경선방법에 대한 룰(rule) 문제로 각 정당 주요후보자들 간의 줄다리기가 긴장감을 더하면서 지지후보를 중심으로 당내 계파간 갈등이 감정대립으로까지 번지기도 하였다. 정당의 후보자 공천에 있어 공정성과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선거법에 경선규정을 두고 있지만 곳곳에서 허점이 드러나 현행제도의 손질 필요성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인가에만 관심을 갖고있는 유권자들 입장에서는 경선룰(rule)의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부 관심 있는 유권자들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국민경선제도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예비선거의 프라이머리(Primary)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도입필요성에 막연히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각국의 선거제도는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 나라의 정치문화에 적응하여 진화해온 때문에 그런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제도의 외형만 보고 섣불리 접목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국민경선제를 미국의 예비선거와 대비하면서 국민경선제 실시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짚어 보고자 한다.
200년 미국정치진화의 산물 미국의 예비선거
미국 대통령선거제도는 의회간접선거도 국민직접선거도 아닌 대통령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서 선거절차도 각 주의회에 위임되어 50개 주가 각기 다른 선출절차를 갖고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이러한 선출 방식에 따라 정당의 후보자 추천 또한 각주에서 선출된 대의원이 참여하는 전당대회(Convention system)에서 결정하는데 현재 각 주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정당의 전당대회대의원 선출방법은 기본적으로 코커스제도(Caucus System)와 프라이머리제도(Primary System)이다.
초기 정당의 후보자지명은 소수의 당간부들이 결정하는 폐쇄적인 코커스(Caucus) 제도가 주류였지만 정치환경의 변화에 따라 일반당원과 국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오늘날의 예비선거제도로 점진적으로 발전하여 왔다. 코커스(Caucus)는 공직선거 후보자를 선출하고 정당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당원 또는 정당간부의 모임으로서 전국전당대회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하여 주전당대회(State Convention)의 전 단계에서 개최된다.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코커스(Caucus)를 실시하는 주는 알라스카 등 12개주 2속령이고 민주당만 실시하는 주가 아이다호등 2개주와 민주당 해외선거구, 공화당만 실시하는 주는 몬태나주와 2속령이다. 코커스(Caucus)는 당내행사이므로 주정부가 아닌 정당의 주위원회가 주관하고 일반적으로 투표구코커스(Precinct)→카운티전당대회(County)→지역구전당대회(District)→주전당대회(State)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 전국전당대회 대의원(National Convention delegates)을 선출한다.
프라이머리(Primary)는 본 선거처럼 선거인이 투표소에 가서 투표하는 방법인데 선거인의 당적보유를 기준으로 참여를 제한하는 유형에 따라 개방형[Open primary: 당적에 상관없이 주요정당 중 어느 한곳에 투표할 수 있음-민주당은 조지아주등 2개주, 공화당은 아이다호주 등 14개주 1속령], 폐쇄형[Closed Primary : 정당의 당원만 소속정당의프라이머리에 투표할 수 있음-민주당은 애리조나주 등 13개주 1속령, 공화당은 캘리포니아주 등 14개주 1속령], 수정형[Modified Primary : 비당원은 어느 정당의 프라이머리에도 참석할 수 있고 이 경우 자동으로 투표한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됨-조지아주 등 11개주] 등 다양한 형태로 분류되지만 관리책임은 주정부가 맡고 대부분의 주가 민주·공화 양당의 프라이머리를 같은 날에 실시한다. 이와 같이 미국의 예비선거는 프라이머리(Primary)든 코커스(Caucus)든 그 실시방법이 각 정당별 또 각 주별로 상이하고 복잡한데 이는 미국 정당과 대통령후보지명제도가 각 정당의 전당대회와 연계되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선출규정이 수시로 변하는 우리의 국민경선
우리 선거법에 경선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5년이다. 그 이전에는 각 정당이 당헌 당규에 의거 자체적으로 경선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우리 정당사에서 한동안 제왕적 총재제라는 말이 회자되었듯이 경선이 소수 실력자의 의중에 따라 좌우되어 공정성 시비와 더불어 당원매수, 경선불복 등 갖가지 오점으로 얼룩지면서 전체 선거분위기를 흐리는 주요요인 중 하나였다. 따라서 경선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및 실효성을 확보할 불가피한 조치로서 공직선거법에 별도의 장[제6장의 2(정당의 후보자 추천을 위한 당내경선)]을 마련하여 경선관련 규정을 두게 되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경선에서 떨어진 자는 본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하였으며(§57의2 ②),경선운동방법은 예비후보자가 할 수 있는 선거운동 방법(§60의3)과 후보자가 작성하는 경선홍보물 1종, 그리고 정당이 개최하는 합동연설회 또는 합동토론회 등으로 한정하고 있다(§57의3). 투·개표사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위탁하여 국가예산으로 관리하되(§57의4), 경선과 관련한 매수 등의 부정행위를 금지하고(§57의5∼6) 이의 위반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다(§230, §255). 이와 같이 공직선거법에 경선에 관한 별도규정을 두고 있음에도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무엇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후진적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경선이 정당내부행사라는 본질적 한계를 이유로 경선방법을 비롯한 선거인의 범위와 규모 등 경선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들을 정당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미국의 예비선거에서는 지지율이 못 미치는 후보자들이 예비선거 도중에 순차적으로 사퇴하면서 대통령후보자지명 전국전당대회(National Convention)가 축제의 마당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주요 정당의 경선과정에서 보았듯이 아름다운 용퇴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선거 때마다 경선룰이 논란거리가 되면서 수시로 바뀐 때문에 후보자가 경선룰을 문제 삼는 것이 당연한 듯 용인되는 분위기이다.
경선을 실시하는 주요정당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민경선을 도입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대통령후보선출규정』을 살펴보면 후보자의 선출은 국민참여선거인단대회의 투표결과 80%와 여론조사결과 20%를 반영하여 최다득표자를 후보자로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90), 국민참여선거인단구성은 전당대회대의원 2/8, 전당대회대의원이 아닌 당원선거인 3/8,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선거인 3/8 비율로 구성하도록 되어있다. 통합민주당쪽을 살펴보면 민주당 『제18대대통령선거후보자 선출규정』에는 후보자가 6인을 초과하는 때에는 먼저 여론조사를 통해 본 경선에 나설 후보 5명을 뽑은 다음 경선을 실시하고 경선투표에서 최다득표자의 득표율이 50% 미만인 때에는 1위와 2위 득표 후보자간 결선투표를 실시하는 3단계의 과정을 거치도록 하여 후보자 수와 선거상황에 따라 절차가 가변적이다. 선거인단은 전국대의원, 당원·시민선거인단, 재외국민선거인단으로 구성하며(§8) 당원과 일반시민이 동등한 1표를 행사하는 완전국민경선제로서(§6) 투표방법은 순회투표(전국대의원), 투표소투표(당원·시민선거인단), 모바일투표( 당원·시민선거인단), 인터넷투표(재외선거인단) 등으로 선거인단의 유형에 따라 4가지 방법으로 다르게 투표할 수 있게 하였다(§42).
국민경선제도 도입의 선결과제들
국민경선제도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예비선거와는 제도가 도입된 배경부터 판이하게 다른 만큼 우리 정치풍토와 선거환경에 맞게 실시하려면 시행에 앞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우선 고려할 사항은 우리 정당법, 정치자금법과의 적합성 문제이다. 우리는 미국과 달리 정당법과 정치자금법을 두고 있다. 우리 『정당법』에서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이라고 정의하고(§2) 정당의 민주적 운영과 민주정치의 건전한 발전에의 기여를 요구하면서 이러한 정당의 민주적 활동을 조장 육성하기 위하여 『정치자금법』에는 매년 일정액의 예산을 편성하여 정당에 경상보조금[2010년 323억원, 2011년 333억원, 2012년 360억원]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마다 선거보조금[2010 지방선거 349억원, 2012 총선 343억원, 2012 대선 365억원]과 공직후보자여성추천보조금, 공직후보자장애인추천보조금 등을 각각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직후보자의 선출을 정당이라는 조직 안에서 그 구성원인 당원의 총의에 따라 결정하지 아니하고 정당 밖의 외부인인 일반 유권자의 의사에 따라 선출하는 것이 정당법에서 규정한 정당의 본질적 기능과 정치자금법에서 선거보조금을 지급하는 취지와 부합하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 다음은 역선택과 선거인의 불법적 동원 등 경선결과의 조작가능성이다. 미국의 프라이머리(Primary)는 주별로 민주·공화 양당이 동시에 실시할뿐만 아니라 투표참여가 당원자격과 직간접으로 연결되어 있어 역선택이 어려운 구조이다. 또 각 주별로 일정수의 대의원을 할당, 당해 주의 투표결과에 따라 그 주의 대의원 수를 후보자에게 배정하는 때문에 어느 특정 주의 전폭적인 지지가 전체 예비선거결과를 왜곡시킬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반면 우리는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지지도가 지역별로 확연히 구분되고 단순 득표수를 기준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때문에 선거인단의 규모에 따라 후보자의역선택과 선거인단의 동원을 통한 경선결과의 조작이 가능하다. 또 일반 유권자의 참여율을 높일 목적으로 선거인의 신분확인이 취약한 투표방법을 선택하는 때에는 과거 부정선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선거인의 대리신고와 대리투표 등 투표부정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는 경선비용과 경선시기의 타당성문제이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경선투표 및 개표관리 비용을 국가가 부담토록 규정하고 있는데(§57의4) 비용규모는 선거인단의 유형과 선거인 수에 따라 가변적이다. 현행 규정에 의거 전면적인 국민경선을 실시한다면 정당별로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의 비용이 추가 소요되는데 공영제에 입각한 본선거의 관리비용부담이 과도한 현 선거상황과 정당에 대한 막대한 국고보조금을 감안할 때 경선비용의 국가부담은 재고해야할 문제이다. 경선시기에 있어서는 실시시기에 대한 제한 없이 여러 정당이 각각 시기를 달리하여 경선을 실시할 경우 선거운동의 상시화와 선거과열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거운동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와 상충될 수 있고, 또 경선사무의 중복관리에 따른 중앙선거관리 위원회를 비롯한 관계기관의 업무부담 또한 그 양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하겠다.
이외에도 군소정당 후보자 및 무소속 후보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비롯한 공직선거법의 많은 규정들이연관 되어 있어 국민경선제는 후보자간의 이해득실에 국한된 정당내부의 문제로 한정할 수 없다. 각정당이 국민경선제를 추진하는 의도가 본 선거의 승리를 위한 흥행성에 있음을 감추지 않고 있듯이 우리 선거에 있어 국민경선제는 정당의 후보자 선출에 있어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절차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 정당들은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틈타 정치관계법을 그들 입맛에 맞게 개정하면서 그 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떠넘겨 왔다. 국민경선제 또한 유권자들이 정당의 처분에 맡기고 방관한다면 정당잔치에 들러리 서며 비싼 관람료를 치르게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돈만 내는 들러리로 전락되지 않으려면 국민경선이 정당내부문제가 아니라 선거법을 비롯한 정치관계법 전반에 대한 깊은 연구검토가 요구되는 중대한 정책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