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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르네상스의 갈림길 : 배심재판과 조서재판

  • 작성일2013.03.19
  • 조회수1,043
단행본 이미지
저자, 발간일,판매가격,언어,판매여부,면수
저자 랭빈
발간일 2012-12
판매가격 20,000원
언어 한국어
판매여부 판매중지
면수 259
16세기 영국 형사소송법이 새롭게 변했다. 예심이 시작됐다. 1544년부터 1545년
사이에 공포된 두 개의 법률에 의하면, 치안판사가 피의자와 증인을 신문해서 기록
을 작성하고 이를 법원에 제출하게 했다. 즉, 치안판사에 의한 신문과 증거수집이라
는 가장 대륙적인 형사소송절차가 영국에 출현한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학자들은,
계수의 결과라고 했다. 대륙의 모델, 즉, 로마법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륙의 예심이
영국에 전격 수용된 걸로 봤다. 이런 소위 계수론에 의하면 프랑스의 예심판사와 독
일의 예심판사, 영국의 치안판사(justices of peace)는 완전히 같은 인물이 된다. 하
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영국이 설령 예심과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고 해도 그건
대륙 게 아니다. 로마법과 교회법의 전통을 계수한 게 아니다. 영국 고유의 제도가
진화한 결과다.
계수론은 대륙의 제도를 근거로 하므로, 대륙의 제도를 먼저 알아야 계수론을 효
과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 대륙의 제도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알 목적이 아니다. 영
국의 제도를 이해하는 발판이다. 영국에서 새로 진화한 제도의 특징을 비교법적으로
감별할 수 있다. 그럼으로써 계수론이 맞는지, 틀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대
륙과 다르다는 말로, 계수론이 부정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계수론이 틀린 이론이
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이론은 아니다. 계수론도 나름대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계
수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물증을 제시해야 한다. 어디서 틀린 것인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대륙과 비교하기 위해, 영국의 16세기를 들여다보면, 그
곳은 그야말로 불모지다. 아무도 영국의 16세기를 제대로 연구하지 않았다. 그것 역
시, 계수론 때문이다. 계수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16세기에 대한 설명이 끝난다. 16
세기 영국법을 공부할 필요가 없어진다. 차라리 16세기 대륙법을 훑는 편이 빠르다.
계수론의 중요한 폐해는 바로 여기 있다. 계수론은 영국법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대
한 연구를 늦추는 결과를 낳았다.
16세기 영국에서는 아주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다. 종래의 문법으로 해독되지 않
는 그런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너무 특이해서 사람들은 그냥, 수입한 거지, 라고 어
림짐작했다. 요컨대, 합리주의(rationalism)가 태어난 것이다. 영국 중세법학이 그토록
피하고 싶어 했던 게 합리주의였다. 그런데 그게 16세기 영국에 등장했다. 갑자기
다른 나라의 제도를 계수한 게 아니다. 영국이 가지고 있던 고유한 제도가 진화해서
합리주의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배심원에서 치안판사로 중심이 바뀌었다. 소위 검
사 비슷한 직책(prosecutorial function)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동체나 배심원 같은 어
중이떠중이에게 위임되었던 범죄 처벌 기능이 치안판사라는 국가공무원에게 이전되
었다. 그렇게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왔다. 튜더 왕조는 그런 면에서 중세와 근대 사
이에 있다. 튜더 왕조에서 일어난 변화의 핵심은 이것이다. 근대국가의 형사사법이
탄생했다는 점, 치안판사의 합리주의가 탄생했다는 점, 바로 그것이다.
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분들은 제4장의 텍스트 분석은 건너뛰어도 좋다. 제1장에
도 역시 법에 대한 약간 까다로운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도 경고해 둔다. 하지만 그
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깊이 읽기 위해서는 이 텍스트가 중요하다. 이 책의 주된
목표는 16세기 영국이 만들어 낸 두 가지 텍스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있기 때문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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